23년 10월 21일, 두번째 과로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장소는 교대역에 위치한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 사무실이였어요.
오늘은 과로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청년분들이 찾아주신 만큼 '청년들의 과로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북토크 내용 일부를 공유합니다.
일하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과로 유가족이 말하는
‘청년 과로에 대하여’
진행자) Q. 오늘은 과로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청년분들이 찾아주셨기 때문에, 청년들의 과로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먼저, 작가님의 경험을 여쭤보겠습니다. 책에 나와있는 작가님의 오빠 역시 청년이셨지요. 오빠의 과로문제에 대해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빠는 어떤 과로문제로 힘들어하셨나요?
김설) A. 오빠는 사내 기숙사에서도 나서서 총무를 맡을 정도로 평소 주도적으로 일을 맡기도 하고 책임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끼치는 것을 싫어했고요.
오빠는 약 7년차 3D 도면설계, 즉 CAD 설계 일을 했어요. 사망 3~4개월 전에는 회사의 한 큰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오빠는 그 중 설계 책임자였어요. 그와 동시에 몇 달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어요. 당시 그 프로젝트는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오빠는 정말 주말, 연휴 없이 매일 출근했어요. 제가 세어보니 31일 중 30일을 출근했었습니다. 야근도 잦고, 회사에서 자는 경우도 있었죠.
경력직은 나가고 신입만 들어오는 등 일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경력있고 책임감 많 몇몇에게 일이 몰렸고 그 중 하나가 우리 오빠였어요.
떠나기 2주전쯤에는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어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퇴사하고 싶다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눈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Q. 과로하고 있을 당시 오빠의 신체적, 정신적 소진(번아웃)상태가 느껴지셨을 텐데요. 오빠의 달라진 점이 있으셨을까요?
A. 사망 전날 오빠는 출근 길에 피곤해서 졸다가 차 사고를 냈어요. '눈을 떠보니 차가 도랑에 빠져있더라'고 말했죠. 매일 잠을 못자고 일을 하니 피로가 정말 많이 누적된 상태였죠.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출근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서 몇 주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거에요. 그렇게 피곤이 쌓이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오빠랑 저는 따로 살고 있었는데, 간혹 주말마다 본가에서 마주치면 오빠는 극도로 예민하고 까칠했어요. 말만 걸어도 짜증을 부르니 말조차 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동시에 무기력했어요. 원래 영화보기나 피규어 조립 등 취미가 많은 사람인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나 관심도 없었죠.
식욕도 떨어졌구요. 떠나기전 주말에 오빠가 집에 왔을 때 밥을 안먹길래 어머니께서 강하게 권해서 겨우겨우 먹은 적도 있었어요.
Q. 오빠는 가족들에게 일의 어려움, 힘듬을 토로하셨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퇴직’을 결정하셨는데요. 그러나, 퇴직을 바로 앞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시게 되셨어요. 지금 과로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작가님께서 조언해주실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A. 저는 무엇보다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말하고 싶어요.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잖아요? 스스로 안 그럴 것 같아도 지금 내 상태가 좋지 않다, 위험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즉시 멈추기'를 바라요. 퇴사든 휴직이든 어떤 형태로든요. 그리고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세요'. 생계와도 연결이 되있기에 퇴사나 휴직을 쉽사리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급적 피할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해요.
저 역시 오빠가 이렇게 한순간에 갈 지 몰랐어요. 오빠는 평소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아니었고, 우울증도 없었어요. 이전에 자해를 했던 적도 없구요. 오빠를 잃어보니 극한으로 내몰리면 누구든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정말 일하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인내를 '무조건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내를 다르게 정의해요. 인내란 자신의 한계와 범위를 알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라 말해요. 저 역시 극한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내 상황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리고 일 때문에 가족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라라고 간곡히 말하고 싶고요, 필요하다면 노동 센터나 심리 상담을 찾기도 하고 지인에게 말하는 등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꼭 권하고 싶어요
Q. 과로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 사람도 마음이 무척 힘들 것으로 사료되는데요. 지켜보는 분들을 위해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A. 예민함을 받아주는 것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눈치를 살피는 일도 높은 긴장도와 스트레스를 요합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몸도 마음도 고생이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을 지키고 보살피는 분들께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볼 의무가 있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보살필 수 있으니 남이 아닌 '나'를 반드시 보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과로로 인해 번아웃 상태가 되면 당사자는 객관적, 이성적 판단이 불가할 정도로 뇌 기능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필요하다, 위험하다 싶으면 옆에서 강제로라도 휴직을 권고하는 등 강력하게 당사자를 제지하고 말려 주세요. 사실 이는 개인이나 가족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니라 회사나 사회에서 시스템적으로 말려줘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내 상담사를 두고 위험성이 판단되면 휴직을 권고하고 이를 알리는 제도 등으로 노동자를 보호해야하는 거죠. 하지만 아직 현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않으니, 개인적으로라도 말렸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조언을 넘어서 문제를 같이 해결해주는 '동행자'가 되어주세요. 필요하다면 같이 노동 상담도 받아보고, 이직을 도와주기도 하구요. 이미 과부화가 되어있는 상태에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에너지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고소 방법을 알아보기도 하고, 이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진로를 같이 고민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것을 대신해서 해결해줄 순 없어요. 하지만 에너지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와 함께해주는 이가 있고 이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 더 나아가는 힘이 되어주리라 생각합니다.
과로 북토크 도서
1.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2. 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
23년 10월 21일, 두번째 과로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장소는 교대역에 위치한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 사무실이였어요.
오늘은 과로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청년분들이 찾아주신 만큼 '청년들의 과로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북토크 내용 일부를 공유합니다.
진행자) Q. 오늘은 과로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청년분들이 찾아주셨기 때문에, 청년들의 과로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먼저, 작가님의 경험을 여쭤보겠습니다. 책에 나와있는 작가님의 오빠 역시 청년이셨지요. 오빠의 과로문제에 대해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빠는 어떤 과로문제로 힘들어하셨나요?
김설) A. 오빠는 사내 기숙사에서도 나서서 총무를 맡을 정도로 평소 주도적으로 일을 맡기도 하고 책임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끼치는 것을 싫어했고요.
오빠는 약 7년차 3D 도면설계, 즉 CAD 설계 일을 했어요. 사망 3~4개월 전에는 회사의 한 큰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오빠는 그 중 설계 책임자였어요. 그와 동시에 몇 달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어요. 당시 그 프로젝트는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오빠는 정말 주말, 연휴 없이 매일 출근했어요. 제가 세어보니 31일 중 30일을 출근했었습니다. 야근도 잦고, 회사에서 자는 경우도 있었죠.
경력직은 나가고 신입만 들어오는 등 일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경력있고 책임감 많 몇몇에게 일이 몰렸고 그 중 하나가 우리 오빠였어요.
떠나기 2주전쯤에는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어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퇴사하고 싶다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눈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Q. 과로하고 있을 당시 오빠의 신체적, 정신적 소진(번아웃)상태가 느껴지셨을 텐데요. 오빠의 달라진 점이 있으셨을까요?
A. 사망 전날 오빠는 출근 길에 피곤해서 졸다가 차 사고를 냈어요. '눈을 떠보니 차가 도랑에 빠져있더라'고 말했죠. 매일 잠을 못자고 일을 하니 피로가 정말 많이 누적된 상태였죠.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출근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서 몇 주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거에요. 그렇게 피곤이 쌓이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오빠랑 저는 따로 살고 있었는데, 간혹 주말마다 본가에서 마주치면 오빠는 극도로 예민하고 까칠했어요. 말만 걸어도 짜증을 부르니 말조차 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동시에 무기력했어요. 원래 영화보기나 피규어 조립 등 취미가 많은 사람인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나 관심도 없었죠.
식욕도 떨어졌구요. 떠나기전 주말에 오빠가 집에 왔을 때 밥을 안먹길래 어머니께서 강하게 권해서 겨우겨우 먹은 적도 있었어요.
Q. 오빠는 가족들에게 일의 어려움, 힘듬을 토로하셨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퇴직’을 결정하셨는데요. 그러나, 퇴직을 바로 앞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시게 되셨어요. 지금 과로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작가님께서 조언해주실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A. 저는 무엇보다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말하고 싶어요.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잖아요? 스스로 안 그럴 것 같아도 지금 내 상태가 좋지 않다, 위험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즉시 멈추기'를 바라요. 퇴사든 휴직이든 어떤 형태로든요. 그리고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세요'. 생계와도 연결이 되있기에 퇴사나 휴직을 쉽사리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급적 피할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해요.
저 역시 오빠가 이렇게 한순간에 갈 지 몰랐어요. 오빠는 평소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아니었고, 우울증도 없었어요. 이전에 자해를 했던 적도 없구요. 오빠를 잃어보니 극한으로 내몰리면 누구든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정말 일하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인내를 '무조건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내를 다르게 정의해요. 인내란 자신의 한계와 범위를 알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라 말해요. 저 역시 극한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내 상황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리고 일 때문에 가족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라라고 간곡히 말하고 싶고요, 필요하다면 노동 센터나 심리 상담을 찾기도 하고 지인에게 말하는 등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꼭 권하고 싶어요
Q. 과로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 사람도 마음이 무척 힘들 것으로 사료되는데요. 지켜보는 분들을 위해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A. 예민함을 받아주는 것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눈치를 살피는 일도 높은 긴장도와 스트레스를 요합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몸도 마음도 고생이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을 지키고 보살피는 분들께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볼 의무가 있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보살필 수 있으니 남이 아닌 '나'를 반드시 보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과로로 인해 번아웃 상태가 되면 당사자는 객관적, 이성적 판단이 불가할 정도로 뇌 기능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필요하다, 위험하다 싶으면 옆에서 강제로라도 휴직을 권고하는 등 강력하게 당사자를 제지하고 말려 주세요. 사실 이는 개인이나 가족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니라 회사나 사회에서 시스템적으로 말려줘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내 상담사를 두고 위험성이 판단되면 휴직을 권고하고 이를 알리는 제도 등으로 노동자를 보호해야하는 거죠. 하지만 아직 현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않으니, 개인적으로라도 말렸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조언을 넘어서 문제를 같이 해결해주는 '동행자'가 되어주세요. 필요하다면 같이 노동 상담도 받아보고, 이직을 도와주기도 하구요. 이미 과부화가 되어있는 상태에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에너지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고소 방법을 알아보기도 하고, 이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진로를 같이 고민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것을 대신해서 해결해줄 순 없어요. 하지만 에너지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와 함께해주는 이가 있고 이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 더 나아가는 힘이 되어주리라 생각합니다.
1.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2. 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